현풍(포산)곽씨 대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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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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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세업(忠孝世業)
나라에 충성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함을 대대로 내려오는
업으로 삼고
청백가성(淸白家聲)
청렴·결백한 정신과 행동으로 집안의 명예와 명성으로
삼는다.

우리들 포산곽씨 가문에는 시조님 경(鏡)字조 이후로 조상님으로부터 물러받은 유산이 있으니 그 유산은 다름 아닌 정신적으로 사람의 바탕을 길러주시는 가훈이 그것이다. 충효세업(忠孝世業)과 청백가성(淸白家聲)이 바로 우리들 문중에 전래하는 정신적 유산인 것이다.
이 여덟자의 유훈은 歲歲年年 성조님 이래로 우리들 가손들의 혈통을 타고 전해지면서 수많은 충효열과 청백리를 배 출하였던 것이다. 이 가훈을 더욱 새겨서 값지게 표훈(表訓)하기 위하여 영남의 성지 충효열의 본고장 십이정려각앞 에 문훈비를 세우니 감회가 깊지 않은 수 없다.이 문훈비는 本山 곽종량(郭鐘凉) 씨의 정성어린 헌금으로 건립되었다.

문훈비를 세우면서...

우리의 선조(宣祖)님들께서는 충효(忠孝)와 청백(淸白)을 가장 중요한 덕목(德目)으로 삼고 사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문중(門中)에서 우러러보며 칭송(稱頌)하는 12여각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40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짚신을 신고 10일이나 걸어야 한양(漢陽)에 갈수 있었던 것이 지금은 지구 반대쪽에 있는 서양(西洋)까지도 하루만에 갈수 있고, 온세계가 마치 한 방안에 둘러앉아 얘기하듯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회담을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변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충효(忠孝)와 청백(淸白)의 정신 입니다. 어떤이는 이런 것을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팽개치고, 나만 편하면 되고, 돈이나 많으면 제일이라고 합니다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이 덕목(德目)은 절실히 필요하다가 봅니다. 지금 우리나라 실정을 보십시오. 사는 형편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잘 삽니다. 그런데도 인심(人心)은 어떻습 니까? 그때보다 훨씬 나빠졌습니다. 친척, 이웃간은 말할 것도 없고, 부자(父子)?형제(兄弟)간에도 다정스레 지내기는 커녕 싸움이 잦으며, 나라일을 맞은 고관(高官)들도 제 할 일은 다하지 못하면서 부정(不正)한 방법으로 돈이나 챙기 다가 감옥으로 가는걸 보지 않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충(忠)이 없으면 나라가 망하고 효(孝)가 없으면 가정이 깨지고 청백(淸白)이 없으면 추한 인생(人生)이 되는 것은 변하지 않은 진리(眞理)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십이정려각에 모셔진 선조(先祖)님들도 그위의 선대(先代)로부터 내려온 충효(忠孝)와 청백(淸白)이란 숭고( 崇高)한 유훈(遺訓)이 있었고, 그 유훈을 성실히 따라서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 유서(由緖)깊은 자리에 문훈비를 세우는 뜻은 이 곳을 지나는 후손(後孫)들이 다시금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굳게 다져 선조(先祖)님들께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고, 나아가 더욱 훌륭한 사람이 되어 선조(先祖)께 더큰 영광(榮光)을 드리자는 것입니다.
이 문훈비를 세우는데 온갖 익노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심혈(心血)을 기울여 유종(有終)의 미(美)를 이룩한 동후(東厚), 인길(寅吉), 창락(暢洛) 제족(諸族)에게 진심(眞心)으로 사의(謝意)를 표(表)하고, 또한 이 책자를 만드는데 자료모집과 편집(編輯)에 노고(勞苦)가 많았던 창락군(暢洛君)에게 거듭 감사하는 바입니다.
끝으로 종친(宗親) 제위(諸位)의 건승(健勝)과 무궁(無窮)한 발전을 기원(祈願)합니다.
감사합니다.

1999년 10월 3일
곽종양(郭鍾凉) 근지(謹識)

지도

소재지 : 대구 달성군 구지면 소례 (십이정려각 앞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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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6 | 지도 크게 보기 ©  NHN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