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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효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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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양리 산144번지(하단 위치약도참고)에 있는 자연암괴동굴로 임진왜란(1592)때 왜적의 침입
에 화를 피하기 위해 곽재우장군의 종형인 곽재훈(再勳)은 네아들(潔결, 淸청, 泂형, 浩호)과 현동 유가사 인근의 굴
속에 피안하였다가 아버지의 천망병(기침병)으로 인해 발각되어 네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차례로 해를 당하니,
왜장도 4형제의 효심에 감동하여 此人 孝子之父 後人勿害(차인효자지부후인물해) : 이 사람은 효자의 아버지이니 뒤
사람은 해치지 말라 라는 패를 써서 등에 걸어주며 살려 보냈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승문되어 선조임금이 효자 정
려를 내리셨다. 그 후 향리사람들은 사효굴(四孝窟)이라 칭하고 4형제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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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효자공 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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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면 쌍계리 산1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4형제가 동혈(同穴)에 모셔져 있으며, 부친 재훈공의 묘소도 같이 있다.
묘소앞에는 대구광역시에서 설치한 문화재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묘사는 신당 대종묘사(음10.11) 다음날인 음력 10.12에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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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효자공묘소 전경 - 청산곽유지회장님이 묘비건립 및 묘역정화사업을 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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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효자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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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효굴 서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신은 180cm, 폭 52cm, 두께 23cm이며 전면에는 '포산곽공 결청형호 순효비(苞
山郭公 潔淸泂浩 殉孝碑)'라 적혀 있고, 기와지붕돌이 얹혀있다. 뒷면의 비문은 구한말 거유인 계암 송기덕 선생이 지
은 것으로 지고 있으며, 측면에는 '단군기원 갑오2백95년 임인갑월(檀君紀元甲午二百九十五年 壬寅甲月)의 건립하
였다, 비각 주위에는 비각 보호시설로 시멘트 블럭으로 담장을 둘러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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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4일 발견한 12명의 각자
선무랑공파 27세~29세손이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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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호재(景孝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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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면 쌍계2리에 소재한 4효자공의 추모재사로서 찬건년대는 미상이고, 계암 성기덕(成耆悳)선생의 기문(記文)이
전한다. 지금은 허물어지고 나대지로 선무랑공파 종중소유로 남아있다. 문중 차원에서 조속한 복원이 요청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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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우선생과 십이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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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풍곽씨 십이정려중 제5려가 4효자공의 정려이다. 면우 곽종석선생이 4효자를 찬(撰)한글은 십여년전에 사효굴 동
쪽문 벽면에 29세손 곽종간(鍾干)선생의 글씨로 새겨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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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효굴 정비사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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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효굴 보존계가 해산되고 40년이상 방치된 유적지를 곽태환(선무랑공파 32세손 모정)과 곽정섭(탁정헌공차 32세
손 오설) 양인이 4개월전부터 현재까지 주말을 이용하여 잡목제거, 넝쿨식물제거, 등 정비작업을 계속하고 있음. 작
업중 구전으로 전해오던 '사효굴' 각자를 2월25일 굴 서편 암벽을 걷어내면서 발견하였음. 종9세손 곽주곤공이 80여
년전 일제강점기에 쓴 것으로 추정됨.
3월 4일에는 '사효굴' 각자 아래에서 당시 문중중심으로 조직된 사효굴 보존계원인 곽진노, 곽기일, 곽치곤, 곽종락,
곽상노, 곽중희, 곽통식, 곽순희 등 12일의 이름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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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양리 산 144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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