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풍(포산)곽씨 대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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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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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는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7m, 높이 15에 달하며 나이는 약600년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7호
명 칭 현고수 (懸鼓樹) 수량/면적 1주
지정(등록)일 1983.12.20 해 제 일 2008.03.12

2008년 3월 12일 천연기념물 제493호로 승격지정됨에따라 지정해제됨.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북을 매단 나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이 부산포에 침입하자 곽재우가 의병을 모아 훈련시키면서 나무에 큰 북을 매달아 쳤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크기는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7m, 높이 15m에 달하며 나이는 600년 정도이다.
곽재우는 이곳에서 매부인 허언심(許彦深)과 함께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아 훈련시키고 가재(家財)를 털어 병사의 의식주를 해결하였다고 전해진다. 근처에 있던 곽재우의 생가(生家) 터는 없어지고 집터만 남아 있다.
[출처] 의령 세간리 현고수 [宜寧世干里懸鼓樹 ] | 네이버 백과사전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이 나무는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7m, 키가 15m에 달하는 느티나무이나 '북을 매단 나무' 란 뜻의 현고수(懸鼓樹)가 더 잘 알려져 있다. 선조 25년(1592) 4월 13일 왜적이 부산포를 침입하는 것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으나 관군은 변 변한 대응한번 못하고 연달아 패배만 하였다.
당시 41세의 유생 곽재우는 왜적과 싸우기로 결심하고 4월22일 전국 최초의 의병을 모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집 앞에 있던 이 느티나무에 큰북을 매달아 놓고 의병의 훈련을 독려하였으며 관으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었으므로 자형이 되는 허언심(許彦深)과 함께 가재를 털어 의병들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필요한 경비를 충당해 나갔다.
잘 훈련된 곽재우 장군의 의병은 왜적과 용감히 맞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이 나무는 현고수로 불리며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아 왔다. 홍의장군이라고도 알려진 의병대장 곽재우는 이 마을에서 태어났으나, 원래 고향은 경북 현풍이었다.
그의 부친인 곽월 (郭越)이 이 마을에 사는 진양 강씨와 재혼을 하여 처가살이를 하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살게 되었다. 현고수 옆에 생가가 있었으나 없어지고 다만 오늘날 희미하게 집터만 전해온다. 또한 부친이 지었다는 정자가 용연정 (龍淵亭) 이라는 이름으로 근년에까지 남아 있었으나 이 마저도 지금은 없어져 버렸다.
나무의 나이는 520년이라고 소개되어 있으나 추정근거를 알 수 없다. 당시에 북을 매달 수 있을 정도의 큰 나무라면 적어도 2∼3백년은 되었을 것이니 나무의 나이는 6~7백년으로 좀더 올려 잡아야 하지 않나 싶다.
나무 옆에는 상기 내용의 한글전용 유허비(遺墟碑)가 인상적이다.

유허비(遺墟碑)

천연기념물 지정기사 추가
마을입구에서 본 현고수

지도

소재지 :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741-1
소유자 : 의령군 관리자(관리단체) 유곡면
연락처 : 경상남도 의령군 문화체육과 055-570-2440

바로 뒤로 기와집이 옛 망우당의 생가이다.
정면 우측 토담길을 조금 따라가면 복원된 생가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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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0 | 지도 크게 보기 ©  NHN Co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