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향(배향)인물
1. 14世 진사공 휘 승화(進士公 諱 承華)
字는 자실(子實), 호는 규헌(睽軒)이며, 부친은 청백리 휘 안방(淸白吏 諱 安邦)이다.
성종 정유년에 진사가 되시다.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宏弼)선생과 함께 점필재 김종직(?畢齋 金宗直)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한훤당과 함께 점필재 문하의 양수재(兩秀才)라 칭하였다. 한훤당선생을 배향한 도동서원(道東書院 :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별사(別祠)에 배향하였으나, 1990년 화산서원 경덕사(景德祠)를 창건하고 위패(位牌)를 환안(還安) 향사함.
2. 17世 예곡공 휘 율(禮谷公 諱 走+日)
字는 태정(泰靜), 호는 예곡(禮谷)이며, 청백리 휘 안방의 현손(玄孫)이다.
남명 조식(南溟 曺植)선생의 고재(高弟) 한강 정구(寒岡 鄭逑)선생과 교유하였고, 명종 무오년에 생원진사에 합격하였으며, 학행으로 우계 성혼(牛溪 成渾), 연봉 이기설(蓮峰 李基卨), 송암 김면(松菴 金沔) 등과 함께 천거되어 군수,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을 역임하였으며, 임진난 때 창의하여 초계군의 가수(假守)로 천거된 사실이 용사록(龍蛇錄)에 전한다. 숙종 때 도동서원별사에 배향되었다. 현곽팔주(玄郭八走)의 한사람이다.
3. 17世 죽재공 휘 간(竹齋公 諱 走+旱)
字는 원정(元靜), 호는 죽재(竹齋)이며, 청백리 휘 안방의 현손이다.
명종 병오년에 문과에 합격하였고, 사성(司成), 강릉부사(江陵府使)를 역임하였고,
대동찰방겸수은어사(大同察訪兼搜銀御使)가 되어, 사신으로 귀임하며 권신(權臣)들이 가지고 오는 부정한 물건을 압수하여 태워버리는 등 강직한 성품으로 이름이 높았다. 낙향하여 창주정(滄洲亭)을 짓고 후진 양성과 자기수양에 힘쓴 사실이 서애집(西厓 柳成龍)에 보인다. 현곽팔주의 한사람이다.
4. 18世 괴헌공 휘 재겸(槐軒公 諱 再謙)
字는 익보(益輔), 호는 괴헌(槐軒)이며, 규헌 휘 승화(?軒 諱 承華)의 현손(玄孫)이며, 선무랑공 휘 초(宣務郞公 諱 超)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義兵將이다.
홍의장군 망우당 휘 재우(紅衣將軍 忘憂堂 諱 再祐)의 사촌형이다.
삼촌인 정암공 휘 월(定庵公 諱 越)에게 학문을 닦았으며, 동강 김우옹(東岡 金宇?)의 천거로 참봉(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유사 김성일(招諭使 金誠一)을 찾아가 모병과 군량수집 등 계책을 제시하고, 서사원 등과 의병을 모집하여 수차 전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는 의병을 이끌고 화왕산성에 가 종숙 충렬공(휘 준)과 충익공(휘 재우)와 함께 방어하여 부호군에 임명되었다.
남이 끝난 후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다.
한강 정구(寒岡 鄭구), 여헌 장현광(旅軒 張顯光),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낙재 서사원(樂齋 서사원) 등과 從遊하며 도의(道義)로 사귀었다.
대구의 유호서원(柳湖書院)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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