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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산문헌세고서(苞山文獻世攷序)

월조가(月朝家)에서 우리 동방 인물의 성대함을 헤아릴 때, 포산곽씨에 이르러서는 문득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다. 대개 그 선대에 충효(忠孝), 훈렬(勳烈), 문학(文學), 풍재(風裁)로 그 벌열(閥閱)을 이루어 자손들이 대대로 전하여 계속 이어지며 가문을 이루어서 일찍이 쇠퇴하지 않았다.
아! 옛적 암곡공(巖谷公)이 홍농(弘農)으로부터 동쪽으로 배를 타고 오시니 나라에서 토지를 봉하고 시호를 하사하여 처음 터전을 연 조상이 되었다. 이어서 거경(鉅卿) 석보(碩補)가 빛나게 서로 계승하여 명종(明宗)과 선조(宣祖)의 즈음에 미쳐서 더욱 빛나고 드러나서 12정려(旌閭)와 일문 삼강(一門 三綱)을 비록 아녀자와 촌부 하인이라도 전하여 말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런데 자세히 그 보첩을 살펴보면 전후에 충훈(忠勳)이 있는 이는 60인이고, 효행(孝行)으로 일컬어지는 이는 100여 인이고, 열행(烈行)으로 알려진 이는 70여 인이고, 문학과 학문으로 이름이 난 이는 140여 인이고, 생원(生員)과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이는 194인이고, 대과(大科)에 급제(及第)한 이는 70여 인이고, 나머지 무과(武科)에 합격한 사람과 음직(蔭職)으로 벼슬한 사람은 모두 300여 인이 되니, 참으로 많구나! 동방의 명문 족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행장(行狀)과 묘갈(墓碣)이 있어서 천고(千古)에 드러낼 수 있으나 무덤의 비석은 각기 다른 고을의 산에 있고 원고에 적은 행장은 집집마다 각자 가지고 있어 여러 아름다움을 헤아리고 통합된 성대함을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 후손 곽주곤(郭柱坤), 곽우영(郭佑泳), 곽재근(郭在根), 곽종구(郭鍾九)가 원근에서 수집하고 채록하여 차례대로 편집하고 정리하여 암곡공(巖谷公) 이하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무릇 하나의 절의와 선행을 일컬을 만한 것이 있는 것을 모두 모으고 모두 실어서 한 가문의 문헌(文獻)을 이루어 장차 무궁한 후세에 징험할 바탕을 두고자 하였다.
지금 인륜이 무너진 시대를 당하여 진실로 효자(孝子) 자손(慈孫)이 아니면 어찌 능히 이런 일이 있겠는가?
편집이 이미 이루어져 장차 인쇄에 부치려고 나에게 서문을 청하였었다. 돌아보건대, 나처럼 덕과 문장이 없는 사람이 어찌 능히 큰 역사(役事)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포산곽씨에게 외손의 관계에 있기에 끝내 사양할 수 없어서 대략 책머리에 그 전말을 서술한다.

도유단알(屠維單閼 : 己卯, 1939년) 수요절(秀葽節 : 4월)에
성산(星山) 배병한(裴炳翰)은 삼가 서문을 쓰다.

月朝家數吾東人物之盛 至苞山之郭輒指不勝其僂 蓋其先以忠孝勳烈文學風裁造其閥閱 子孫世其傳綿綿林林而未嘗替也.
粤昔巖谷公自弘農桴于東 胙土錫諡爲始基之祖 繼而鉅卿碩輔燀赫相承逮夫明宣之際益光以顯 十二旌閭一門三綱雖婦儒儓輿無不傳誦 而細攷其譜牒則前後有忠勳者六十餘人 以孝行稱者百餘人 以烈行聞者六十餘人 以文學儒行著者百四十餘人中 蓮榜者百九十四人 登桂榜者七十四人 餘外以武出身者 以蔭補仕者幷三百餘人多矣哉 方可謂東方名族也 皆有狀有碣可以揄揚於千古矣 而刻之石者阡各異鄕 謄之稿者家各殊篋無以攷衆美之華 而覩一統之盛 故其後孫柱坤,佑泳,在根,鍾九蒐採遠近輯合第次 巖谷公以下逮至近代 凡有一節一善之可稱者畢集而咸載以成一家之文獻將欲有徵於無窮
當此綱彛頹廢之日 苟非孝子慈孫安能有是乎 編旣成將付諸手民問序於余
顧此不德不文其何能爲巨編之役 而余於苞山氏實有連波之誼不可以終辭略
叙其槩于卷端.

屠維單閼 秀葽節 星山 裴炳翰 謹序

포산문헌세고(苞山文獻世攷) 해설

포산문헌세고는 철종 경신년(1860)에 효근(孝根) 선조께서 문중 교화용으로 사적과 사료를 모아 “포산곽씨 삼강록(포산곽씨 삼강록)”을 펴신 것이 처음이다.
이를 근거로 하여 1925년에는 문헌공 후손 찬(瓚), 충익공 후손 종록(宗錄)께서 증보판을 발간한 것이 오늘에 전하고 있으며, 1941년에는 재순(재순)께서 더욱 자세한 내용을 담은 “포산문헌세고(포산문헌세고)”를 편집, 발간하셨다.
서문 : 성주인 여란 배병한(汝鸞 裴炳翰), 번역 : 김홍영.

(현풍곽씨 본향화수회에서 발행한 “현풍곽씨사적”에서 전재함)
충훈공(忠勳功) 68人

□ 곽원진 (郭元振) 8世 : 상서 휘 돈효(敦孝)의 子, 號는 석천(石川), 문과급제,
좨주(祭酒), 대제학(大提學) 역임, 봉(封) 포산군(포산군), 시호 문헌(文憲),
충효로 정문에 표함.

□ 곽 부 (郭 郛) 10世 : 대제학 휘 원진(元振)의 孫, 號는 남강(南岡),
추충익대좌리공신 삼중대광수사도도첨의사, 봉 포산군, 시호 충간(忠簡).

□ 곽만경 (郭萬慶) 13世 : 군기시 소윤 휘 왕보(王輔)의 子, 개국원훈에 녹선,
공조전서, 봉 용진백(龍津伯). (상권 2168쪽)

□ 곽 인 (郭 麟) 世 : 봉사, 일본에서 사망하여 돌아오지 못함. 목은 이색
(牧隱 李穡)선생과 양촌 권근(陽邨 權近)선생이 충절을 찬양한 시가 있음.

□ 곽 항 (郭 恒) 12世 : 군수 휘 정부(廷府)의 子, 字는 성견(성견), 세종조에
용양위부호군소위장군, 한양 수성(修城)공훈으로 소릉군(昭陵君)에 봉함.
(하권 1쪽)

□ 곽 도 (郭 都) 13世 : 판서 휘 유의(游義)의 子, 號는 노재(魯齋) 문과급제,
집의, 증 도승지, 단종 손위시 경회루에서 여섯 신하들과 이별하며 지은
시 2首가 전함. (何忍答時事, 孤臣已白頭, 無窮痛哭恨, 樓月照千秋. 또
危忠如一髮, 翹首呌蒼穹, 欲報君臣義, 與誰生死同. 은퇴하여 임실 노산(任實
魯山)에서 후진교육에 힘씀. 임실삼계서원(三溪書院)에 배향. (상권 952쪽)

□ 곽안방 (郭安邦) 13世 : 의영고사 휘 득종(得宗)의 子, 字는 여주(汝柱), 군수
역임, 이시애난 평정 유공으로 원종공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 현풍 이양
서원(尼陽書院)에 배향. (하권 119쪽)

□ 곽순종 (郭順宗) 13世 : 부사 휘 함( 咸)의 子, 字는 이원(而源), 훈련원정
역임. 북쪽 변방의 난에 삼사의 특천으로 토벌장이 된바 이때 공의 나이는
21세였다. 토벌 중 부상을 입고 돌아오던 중 별세하심. 승정원일기에서
충재 권벌(沖齋 權橃)이 公을 평가한 기록이 있다. (하권 2쪽)

□ 곽한철 (郭漢哲) 15世 : 이조좌랑 휘 심(諶)의 子, 號는 제헌(霽軒), 집의,
중종조 원종공신에 녹훈, 시호 정익(靖翼), 교하 신곡서원(交河 新谷書院)에
배향. (상권 440쪽)

□ 곽자안 (郭自安) 16世 : 한림 휘 분(汾)의 子, 병마절도사, 중종조 원종공신.
(상권 1440쪽)

□ 곽 찬 (郭 趲) 17世 : 진사 휘 승화(承華)의 증손, 사과(司果), 임진왜란 때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의 천거로 소모관이 되어 공을 세움.
(하권 1541쪽)

□ 곽 준 (郭 䞭) 17世 : 진사 휘 승화(承華)의 증손, 號는 존재(존재),
학행으로 현감에 천거됨,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을 지키다 순절함, 두 아들
과 며느리, 딸이 함께 순사하여 一門三綱(일문삼강)이라는 정문에 표함.
시호 충렬(忠烈), 황암(黃巖)서원, 예연(禮淵)서원에 배향. (하권 1570쪽)

□ 곽재우 (郭再祐) 18世 : 휘 월(越)의 아들, 號 망우당(忘憂堂), 임진왜란
때 가장 먼저 의병을 일어키고, 세상에서는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이
라 하였으며, 용기와 힘이 뛰어나 적들이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였으며,
여러 번 기발한 작전으로 공을 세워 선무일등공신으로 녹훈. 한성좌윤과
함경감사를 역임함. 증 병조판서, 시호 충익(忠翼), 예연서원(禮淵書院)배향,
문집 있음. (하권 767쪽)

□ 곽흥무 (郭興懋) 18世 : 사직 휘 기한(基漢)의 손자, 號는 반송당(伴松堂),
나라에서 올바른 행위로 여러 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음. 임진왜란에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 평양의 충렬사(忠烈祠)와 임실의 삼계서원(三溪
書院)에 배향. (상권 1287쪽)

□ 곽 영 (郭 嶸) 18世 : 증 병조판서 휘 한방(翰邦)의 아들이며, 병사 휘 흘
(屹)의 동생, 호는 노곡(蘆谷, 병사 역임,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순절하
여 선무일등공신으로 녹훈. (상권 999쪽)

□ 곽 한 (郭 瀚) 18世 : 판관 휘 자보(子保)의 아들, 號는 치계(痴溪), 생원.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에게 사사함. 임진왜란에 의병활동에 참여한 내용
이 용사록(龍蛇錄)에 전함. 풍기 오암서원(五巖書院)에 배향. (상권 726쪽)

□ 곽순성 (郭舜成) 18世 : 증 사헌부지평 휘 붕(鵬)의 아들, 號는 한계(寒溪),
사직 역임, 임진왜란 때 송암 김면(松菴 金沔) 진중에서 순절함.
(상권 209쪽)

□ 곽수잠 (郭壽岑) 17世 : 집의 휘 한철(漢哲)의 손자, 號는 죽오(竹塢), 진사,
정유재란 때 충렬공(忠烈公) 휘 준(䞭)을 따라 황석산성(黃石山城)에서
순절함, 증 호조참의. (상권 472쪽)

□ 곽 륜 (郭 崙) 18世 : 진사 휘 한방(翰邦)의 아들, 임진왜란 때 홍원 현감으
로써 외적과 싸우다 순사하심. 증 병조판서. (상권 1072쪽)

□ 곽지선 (郭止善) 19世 : 죽간공 휘 률(률)의 아들이며, 봉사 휘 호선(好善)의
동생, 字는 거간(居艮), 진사 문과, 군수,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으로 공을
세움, 증 직제학, 행촌 민순(杏村 閔純) 문인. (상권 808쪽)

□ 곽종민 (郭宗閔) 18世 : 현감 휘 황(趪)의 아들, 字는 경원(敬源), 임진왜란
때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의 천거로 소모관이 되어 의병을 지원, 공을
세움. (하권 330쪽)

□ 곽종도 (郭宗道) 18세 : 참봉 휘 탁(走+卓)의 아들, 임진왜란 때 학봉 김성일
의 천거로 소모관이 되어 의병진에서 많은 공을 세움. (하권 268쪽)

□ 곽방건 (郭邦鍵) 17世 : 증 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 휘 태(泰)의 아들 ,
號는 독송재(獨松齋), 부사 역임, 임진왜란 위성원종일등공신에 녹훈.
(상권 377쪽)

□ 곽 빈 (郭 彬) 19世 : 현감 휘 영(瑛)의 손자,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움.
증 주부. (상권 1440쪽)

□ 곽종문 (郭宗文) 18世 : 부사 휘 방건(邦鍵)의 아들, 號는 동악재(東岳齋),
임진왜란 위성원종공신에 녹훈. (상권 377쪽)

□ 곽산두 (郭山斗) 世 : 임진왜란 때 의병진에 들어가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
신에 녹훈.

□ 곽덕수 (郭德壽) 世 :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웠으며, 사복시정을 역임.

□ 곽충무 (郭忠武) 世 : 임진왜란 때 정병으로 선조일행을 의주까지 호종하여
선무원종공신에 녹훈.

□ 곽충백 (郭忠伯) 世 :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 선조일행을 의주까지 호종하
여 선무원종공신에 녹훈.

□ 곽수민 (郭秀民) 19世 : 군수 휘 희조(熙祖)의 손자, 부사정 역임,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여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 (상권 79쪽)

□ 곽 인 (郭 麟) 世 :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 적을 막아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

□ 곽세희 (郭世希) 世 : 임진왜란 때 사복시정으로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

□ 곽은부 (郭殷夫) 世 : 임진왜란 때 우림위로 선조를 호종하여 선무원종공신
으로 녹훈.

□ 곽작산 (郭鵲山) 18世 : 증 한성좌윤 휘 한형(翰亨)의 아들, 사복시정을 역임,
의병진에 가담하여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 (상권 951쪽)

□ 곽진경 (郭震卿) 世 : 호군 역임, 임진왜란에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

□ 곽진수 (郭震壽) 世 : 사복시정 역임,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왜적과 싸워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

□ 곽 혼 (郭 渾) 世 : 임진왜란 때 훈련첨정 수문장으로서 왜적과 싸워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

□ 곽 한 (郭 漢) 世 :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왜적을 물리쳐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

□ 곽희서 (郭希恕) 世 : 사복시정,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공로로 선무
원종공신으로 녹훈.

□ 곽대덕 (郭大德) 19世 : 직장 휘 강제(康濟)의 손자, 호는 죽오(竹塢), 첨지중
추부사 역임, 임진왜란 때 낙재 서사원(樂齋 徐思遠)과 함께 창의(倡義)하
여 공을 세움. (상권 637쪽)

□ 곽언수 (郭彦水) 19世 : 사간 휘 종번(宗藩)의 증손, 선전관 역임, 선조를
호종한 공로로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

□ 곽응룡 (郭應龍) 世 : 승지 휘 도(都) 후손, 주부 역임, 임진왜란 때 군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

□ 곽영탁 (郭永鐸) 18世 : 참봉 휘 지의(之義) 손자, 참봉 역임,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실이 용사록에 기록됨. (하권 464쪽)

□ 곽재지 (郭再祉) 18世 : 망우당 휘 재우(再祐)의 동생, 참봉, 임진왜란에 군공
을 세운 사실이 용사록에 기록됨. (하권 1111쪽)

□ 곽진방 (郭鎭邦) 19世 : 사직 휘 순성(舜成)의 아들, 號는 경암(警菴), 정유재
란 때 약관의 나이로 동지 수백인과 함께 외적을 맞아 많은 적병과 싸우다
포로가 되어 대마도에 끌려가 3년이나 절개를 굽히지 않으니, 도주가 그
의로움에 감복하여 같이 끌려간 일행 300여명과 같이 귀국토록 하였다.
이 사실을 조정에서 알고 사복시주부 벼슬을 내렸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부해일기(浮海日記)와 강양읍지(江陽邑誌)에 실려 있음. (상권 209쪽)

□ 곽인거 (郭仁居) 17世 : 진사 휘 수장(壽長)의 아들, 호는 영주(映洲), 이조정
랑. 어지러운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음. 원종공신으로 녹훈. (상권 869쪽)

□ 곽방욱 (郭邦郁) 18世 : 족보명 쟁(崢), 이조정랑 휘 인거(仁居)의 아들, 號는
만오재(晩悟齋), 승지 역임, 정유재란 때 의병장으로 재종동생 휘 재상(載
祥)과 함께 순절함. (상권 869쪽)

□ 곽재상 (郭載祥) 18世 : 족보명 준(山+雋), 돈령부정 휘 한원(翰元)의 아들,
號는 송포(松圃), 금부도사 역임, 정유재란 때 재종형 만오재(晩悟齋)공(휘
방욱)과 함께 창의하여 순절함. (상권 869쪽)

□ 곽지수 (郭智守) 世 : 字는 경사(景舍), 임진왜란에 군공을 세운 사실이
용사록에 기록.

□ 곽천성 (郭天成) 18世 : 첨지중추부사 휘 세훈(世勳)의 아들, 현감 역임, 임진
왜란 때 군공을 세운 사실이 용사록에 기록. (상권 1913쪽)

□ 곽호례 (郭好禮) 18世 : 참봉 휘 세웅(世雄)의 아들, 장군, 선무원종공신으로
녹훈. (상권 1734쪽)

□ 곽천구 (郭天衢) 19世 : 진사 휘 현(玹)의 아들, 號는 구봉(九峯), 문과등과,
부사 역임, 이괄의 난 때 어가를 호종하여 원종공신으로 녹선 됨. 청렴결백
하여 이름이 났으며, 평산 구봉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유고가 있음.
(상권 454쪽)

□ 곽운립 (郭雲岦) 19世 : 현감 휘 황(璜)의 아들, 號는 송담(松潭), 종형 구봉
공(九峯公 휘 天衢)과 같이 어가를 금진(錦津)까지 호종한바, 수심이 낮아
배를 띄우지 못하자 왕을 업고 강을 건넜다. 난이 평정된 후 기념 과거를
실시하여 발탁하였으며, 특히 운립(雲岦)이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동부승지
를 제수함. (상권 531쪽)

□ 곽 경 (郭 冏) 21世 : 현감 휘 희현(希賢)의 아들, 字는 자간(子艮), 군수
역임, 증 병조참의, 이괄의 난에 공을 세워 보사(保社)원종공신으로 녹선됨.
(상권 590쪽)

□ 곽성구 (郭聖龜) 20世 : 찰방 휘 치요(致堯)의 아들, 號는 현주(玄洲), 문과등
과, 장령 역임, 부임하는 주,군에서 청렴결백하여 이름이 났으며, 병자호란
때 공을 세움. (상권 2008쪽)

□ 곽인손 (郭仁孫) 21世 : 중랑장 휘 해(海)의 후손, 字는 내성(乃成), 병자호란
때 공을 세우고 순절함. 초명 강화(康華). (상권 1777쪽)

□ 곽유번 (郭維藩) 20世 : 첨지 해(海)의 아들, 號는 鰲巖(오암), 첨지중추부사
역임, 병자호란에 의병을 모집 남한산성 전투에 참가, 울며 강화를 배척함.
임실 삼계서원에 배향. (상권 1222쪽)

□ 곽세건 (郭世楗) 20世 : 전적 휘 융(瀜)의 아들, 號는 무위자(無爲子), 군수 역
임, 미수 허목(眉叟 許穆)문인, 병자호란 때 의병을 모아 령을 넘어 근왕하
려고 하였으나 강화하였음을 알고 통곡하며 돌아옴. 현종 갑인에 소를 올
려 예를 잘못 시행한 것을 간하자 왕이 가상히 여김. (하 1152쪽)

□ 곽 음 (郭 崟) 21世 : 사복시정 휘 지태(之泰)의 아들, 생원, 무신란(戊申亂 :
이인좌의 난)에 군공이 있어 특별히 호조좌랑을 제수함. (상권 454쪽)

□ 곽만봉 (郭萬封) 20世 : 판관 휘 한방(翰邦)의 아들, 字는 천수(天授), 부호군,
무신란(戊申亂)에 공이 있어 원종공신으로 녹훈됨. (하권 31쪽)

□ 곽기화 (郭氣和) 21世 : 증호조참판 겸도총부부총관 휘 경탁(慶卓)의 아들,
호는 무한당(無恨堂), 가선대부 삼도통제우후, 무신란에 공이 있어 원종공
신으로 녹훈됨. (하권504쪽)

□ 곽천리 (郭千里) 世 : 경력 휘 겸산(謙山)의 후손, 동지중추부사, 무신란에
공을 세워 양무일등공신으로 녹훈됨.

□ 곽후천 (郭後天) 23世 : 우장군 휘 기(祁)의 후손, 號는 운암(雲菴), 무신란에
공을 세워 원종공신으로 녹훈됨. (상권 727쪽)

□ 곽태상 (郭泰相) 23世 : 청백리 휘 안방(安邦)의 후손, 字는 성원(聲遠),
선무랑, 무신란 때 군공이 있음. (하권 213쪽)

□ 곽신장 (郭信章) 23世 : 전서 휘 유예(游禮)의 후손, 字는 문재(文哉), 부사직,
무신란 때 지방병사를 이끌고 적을 토벌하여 양무원종공신으로 녹훈됨.
(상권 1584쪽)

□ 곽남택 (郭南澤) 世 : 휘 간(澗)의 아들, 字는 용보(龍甫) 증중추부사, 정묘란
때 순절하여 구암서원에 배향함.

□ 곽윤국 (郭潤國) 世 : 주부 휘 의(儀)의 후손, 字는 영화(榮化), 부호군, 병인
양란 때 군공이 있음. 모친의 병환에 할고(割股)하였으며, 양친이 돌아가심
에 각 3년간 시묘살이를 함.